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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할리우드를 변화시킨 보니 앤 클라이드(Bonnie and Clyde)의 엔딩장면

해외 연예

by 옌P 2017. 9. 1.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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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 중인 범죄자이자 연인관계인 두 사람이 화창한 여름날 남쪽으로 차를 몰고 있다. 이 커플은 즙이 흐르는 푸른 배를 한 입 베어물며 서로 웃고 애정을 나눈다. 그들이 길가에 서있는 누군가를 알아챘을 때, 그 운전자는 도움을 주기 위해 차를 길가에 세운다. 그가 차에서 내렸을 때, 놀란 새의 무리가 나무에서 뛰쳐나와 길을 가로질러 날아간다. 무엇이 그들을 겁먹게 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곧이어 알게된다. 그것은 함정이었다. 덤불 뒤에 숨어있던 경찰들이 쏜 엄청난 총격은 숨어있던 연인을 마구 때리고, 그들은 봉제인형처럼 널부러진다. 셀 수 없이 많은 총격은 그들의 몸과 사지와 얼굴을 마구 뚫는다. 클로즈업한 장면에서 한 총알이 남자의 볼로 들어가고 또 다른 총알은 그의 이마로 들어가는 장면을 보여준다.


결국 총격은 멈춘다. 이 남성 강도는 죽음을 맞이하고 땅에 널부러진다. 여성의 시체는 마치 스위스 치즈가 바퀴에 늘어진 것처럼 차 밖으로 매달려있다. 총을 쏜 경찰들이 덤불 밖으로 나타난다. 영화는 끊기고 화면은 검게 변한다. 그리고 클로징 크레딧이 나타난다. 


이것은 1967년 범죄 드라마 보니 앤 클라이드의 센세이셔널한 피날레였다. 영화사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충격적인 엔딩일 것이다. 기억속에서 완전히 지워진 배우들의 아름다움에 때문에 영화는 훨씬 더 괴로워다. 


이것은 당시에 논란에 직면했고, 현재에도 그렇다. 사실, 여전히 충격적인 임팩트를 주는 보니 앤 클라이드가 벌써 반세기나 지났다는 것이 믿기 어렵다.  보니 앤 클라이드의 감독인 아서 펜(Arthur Penn)은 관객들에게 JFK 암살을 상기시키고 창의적인 사고방식을 제공하기 위해 클라이드의 뇌의 한 부분이 총에 맞아 날아가는 장면을 의도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영화계에 심오한 영향을 주고 대중 문화를 더 널리 알렸다. 보니 앤 클라이드는 미국의 새롭고 더 자유로운 영화 분류 체계를 위한 길을 닦으며 영화 속의 폭력의 규칙을 새로 썼으며, 그것은 오늘날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수없이 많은 영화들이 보니 앤 클라이드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만약 보니 앤 클라이드가 없었다면, 대부에서 소니 코를레오네가 쏟아지는 총알을 맞는 장면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보니 앤 클라이드에 대한 참고자료는 대중 문화에 널리 퍼져있다. 그들은 현대에도 제이지와 비욘세, 룰루 게인스버그와 스칼렛 요한슨과 에미넴의 노래 속에도 등장한다. 비록 그것들이 영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수없이 많은 책과 그림, 그리고 다른 예술 작품들 뿐만 아니라 2011년에는 브로드웨이 작품으로 2013년에는 TV 미니시리즈로도 등장했다. 보니 앤 클라이드 사건은 펜이 영화화 하기 전에 이미 많은 부분에 영향을 주었다. 가령 1950년대 느와르 장르의 액션 드라마인 건 크레이지(Gun Crazy)와 1958년 더 보니 파커 스토리(The Bonnie Parker Story)가 있었지만, 영화만큼 영향력이 있지는 않았다.



유혈 사태의 분수령


모든 사람들이 여전히 보니 앤 클라이드의 가장 충격적인 장면들(특히 마지막 장면)이 끼친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동안 이 영화의 영향력은 영화 속 폭력장면의 혁명보다 훨씬 더 멀리 확장되었다. 보니 앤 클라이드는 새롭고, 흥미롭고, 역사를 정의하는 연출이라는 방향으로 미국의 영화 산업을 조종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면서 할리우드의 근본 자체를 흔들었다. 


초기에 박스오피스의 실패작이었지만, 보니 앤 클라이드는 영국의 열렬한 반응에 따라 재개봉 되었다. 그곳에서 작가 피터 비스킨드(Peter Biskind)는 1998년 그의 책 이지 라이더, 레이징 불스(Easy Riders, Raging Bulls)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것이 히트작이에요, 히트작 이상으로 하나의 현상이었어요."

“It became a hit, more than a hit, a phenomenon.”


보니 앤 클라이드는 곧 미국에서도 하나의 현상이 되었다. 그 당시 많은 비평가들은 적대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칭찬과 박수갈채 없이도 그것은 안정적으로 아카데미상 10개 부문에 노미네이션 되었다.


François Truffaut나 Jean-Luc Godard와 같은 프랑스 영화 제작자들의 작품에 영감을 받으며, 보니 앤 클라이드는 유럽 문화에 영향을 받은 미국 영화에 새로운 흐름을 도래시켰고, 현대적이고 종종 시니컬하며 감수성을 주입시켰다. 이러한 움직임은 언론에서 "새로운 할리우드(New Hollywood)" 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우리는 은행들을 향한 영화 속의 태도가 반영된 감수성들을 볼 수 있다. 보니 앤 클라이드는 1930년대 경제대공황 시기에 벌어진 일이다. 당시의 배경은 경제적으로 무너진 미국이었고, 법의 규칙을 존중하긴 했지만 확실히 은행은 그렇지 않았다. 중요한 초기 장면에서, 보니와 클라이드는 집을 회수 당한 한 남자와 만난다. 보니는 이것을 "불쌍한 수치심(a pitiful shame)"이라고 표현했다.


이 영화의 각본을 쓴 데이비드 뉴맨(David Newman)과 로버트 벤튼(Robert Benton)은 주인공 캐릭터들을 거위를 살찌우는 악당으로 묘사하는 것을 거부했다. 이것이 바로 엔딩 장면이 그토록 충격적인 이유이다. 이 장면은 악인을 패배시킨다기 보다는 확실히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을 살인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몇몇 장면에서, 보니와 클라이드는 진심으로 당황해서 누구든지 그들을 해칠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다.


이 영화의 흔하지 않은 섹슈얼한 에너지와 정치학은 영화의 논란에 기여하기도 했다. 빈정거림은 시작부터 노골적이다. 두 인물이 만나자마자 즉시, 보니는 그녀의 입에 콜라병의 목부분을 선정적으로 매단다. 그리고 한 순간 그의 가랑이 앞에 있던 클라이드의 리볼버를 쳐낸다. 오리지널 대본에는 ménage à trois 장면이 있었지만, 결국 삭제되었다. 보니와 클라이드 사이의 섹스 장면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클라이드는 무력했다. 그리고 특정한 장면에서 그의 총이 그의 페니스를 대체하고 있다는 도발적인 제시를 볼 수 있다.


아서 펜은 보니 앤 클라이드만큼 유명한 영화를 다시 연출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하나의 상징적인 작품을 통해 미국 영화 제작자들이 거대한 유명인이 될 수 있는 문화를 창조해내는데 한 역할을 했다. 새로운 할리우드의 움직임은 미국에서 작가주의를 출현시켰다. 그것은 우수한 작가를 영화의 감독으로 신용하는 시스템이었다. 이것은 오랫동안 영화 산업의 목을 조르던 스튜디오 프로듀서들이 쥐고 있던 권력을 바꾸어놓았다.


그 권력은 1980년대 현대 블록버스터 영화(거대하고 잠재적으로 스튜디오에 예산이 잠식된 영화)가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돌아갔다. 이 새로운 움직임은 죠스(Jaws)와 스타워즈(Star Wars)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전에, 새로운 할리우드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훌륭한 감독들에게 자리를 내주었었다. 이 목록은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 로버트 알트만(Robert Altman),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조지 루카스(George Lucas), 브라이언 드 팔마(Brian De Palma)와 같은 현대 시대에도 매우 훌륭하고 영향력 있는 영화제작자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 모든 예술가들과 수없이 많은 다른 사람들도 보니 앤 클라이드에 무언가를 빚지고 있을 것이다.







(출처: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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